황석희 번역가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
독서 노하우 공개 | 왓츠인마이밀리 ep.1-1
Episode.1-1
번역가 황석희 - 독서편
섬세한 언어 감각과 자연스러운 말맛으로 사랑받는 황석희 번역가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일상의 한 부분이자 번역 작업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기반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곱씹으며 익숙한 문장도 새롭게 바라보고 낯선 표현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의 시선에는 리듬이 묻어난다.
황석희 번역가의 독서 라이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에도 작은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황석희 번역가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
독서 노하우 공개 | 왓츠인마이밀리 ep.1-1
Episode.1-1
번역가 황석희 - 독서편
섬세한 언어 감각과 자연스러운 말맛으로 사랑받는
황석희 번역가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일상의 한 부분이자 번역 작업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기반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곱씹으며 익숙한 문장도
새롭게 바라보고 낯선 표현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의 시선에는 리듬이 묻어난다.
황석희 번역가의 독서 라이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에도 작은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년 차 영화 번역가입니다.
주로 영화를 번역하고, 최근에는 뮤지컬 번역도 하고,
열심히 글도 쓰고 있습니다.
요즘 많이 바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일을 주로 하고 있나요?
5월 달에 나올 책이 있어서 한참 퇴고하고 있고,
영화 번역과 공연 번역도 하고 있고,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상에 스며든 독서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보통 언제, 어디서 독서를 즐기시는 지 궁금합니다.
집에서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아요. 아침에 시간이 나면 잠깐 읽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이와 놀아줘야 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저는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일정이 있을 때는 운전보다는 지하철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동 중이나 일정 사이에 틈이 날 때, 주로 전자책을 읽는 편이에요.
책을 고르실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나요?
두 가지 기준이 있어요.
하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하게 흥미 위주의 책이에요.
요즘 손이 가는 책들을 보면 제가 처한 상황이나 이슈에 따라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사회적으로 워낙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뉴스를 계속 보고 듣다 보니까, 제가 원래 좀 염세적인 편이라 그런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사람이 좋아지는 책이 있을까?' 싶어서 선악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을 다시 믿고 싶을 때 읽을만한 책이 있는지 보기도 하고요.
독서가 영화 번역 작업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번역은 타인의 언어를 옮기는 일이잖아요.
제가 하고 있는 영화 번역 같은 경우는 특히나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죠. 그래서 캐릭터마다 어떤 어투를 구사할지 설정하는 게 중요해요.
아마 그런 특성 때문에 소설을 좋아하고, 또 많이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소설을 보면서 캐릭터 연구도 하고, 번역가마다 문체가 다 다르다 보니까
다른 분들은 캐릭터의 어투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보기도 하고요.
또 저는 같은 책을 여러 번역가의 버전으로 보는 걸 좋아해요. 아니면, 한 번역가가 작업한 책들을 쭉 읽어보기도 하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어투를 연구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고,
각 번역가마다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의 풀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들을 수집해두는 것도 큰 도움이 돼요.
#황석희 번역가의 독서 취향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작품의 원작 도서도 읽어보세요?
영어 번역 경력 초기에는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작품의 원작 도서를 번역하기 전에 읽었어요. 그런데 한 번 혼쭐이 난 적이 있어요. (웃음)
제 생각엔 미리 연구하려고 읽은 건데, 문제는 똑같은 대사가 영화에서 나왔을 때 이미 본 번역을 뛰어넘을 수 없게 된다는 거죠.
만약 원작 도서를 미리 보지 않았다면 그 번역을 넘을 수도 못 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봤으니까 뛰어넘을 수가 없어요.
그 이후로는 원작을 미리 보지 않게 됐어요. 그런데 가끔 원작을 볼 때도 있어요. 팬덤이 두텁거나 세계관이 방대한 영화 같은 경우에는 원작 도서를 읽으면서
자료를 조사하죠. 그런 게 아니면 작업을 마친 후 한번씩 읽어보는 편이에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
황석희 번역가의 에세이
영화보다 원작 도서를 먼저 읽으면 더 재밌을만한
작품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밀리의 서재에서 이다혜 기자님과 함께하고 있는
<리딩 케미스트리>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인데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책이에요.
영화로도 잘 만들었지만, 특히 책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게 번역되어 있고요.
저는 번역가라서 그런지 번역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봤어요.
자연 묘사나 서스펜스 묘사가 굉장히 세밀하게 돼 있거든요.
그런 지점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시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요.
'번역 읽는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아, 원문이 뭔데 이렇게 번역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작품을 좋아해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같은 경우가 그랬어요. 형용사나 부사를 마치 한국 작가가 쓴 것처럼 번역하셨더라고요.
‘이건 어떤 영어 단어를 이렇게 옮기신 걸까?’ 라는 궁금증이 들어서 실제로 원문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번역이 재밌었어요.
판잣집은 팔메토 야자나무 숲과는
거리를 두고 물러앉아 있었다.
숲은 모래밭을 가로질러
목걸이 모양을 이룬 초록색 못을 지나
저 멀리 습지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다.
생명력이 끈길겨서 소금물에서도 잘 자라는 풀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자라나고,
아예 바람모양으로 굽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 《가재가 노래하는 곳》, 25p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한 줄로 리뷰한다면?
'자연 덕후의 1급 스릴러'
번역가이자 창작자로서 특별한 독서법이 있나요?
독특한 독서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띄엄띄엄' 읽어요. 이 책을 읽다가 저 책을 읽고, 그런 식으로요.
제 밀리의 서재를 보면, 10%씩 읽은 책이 수두룩해요. 그러다가도 푹 빠지면 어느 순간 후루룩 다 읽기도 하고요.
또 조금 특별한 저만의 독서 방법 중 하나는 번역가를 따라 읽는 거예요. 그러면 높은 확률로 실패하지 않아요.
어떤 책을 읽었는데 번역이 좋다 싶으면, 밀리의 서재나 인터넷 서점에서 그 번역가 이름을 찾아봐요.
그러면 관련 도서가 쭉 뜨잖아요. 그 중에서 골라 읽곤 해요.
그리고 같은 책을 다양한 번역가의 버전으로 읽기도 해요.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해서 여러 번 봤거든요.
최근에 밀리의 서재 팟캐스트 <황석희의 책생연분>을 진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번역가를 찾아서 조사하다 보니까 《프랑켄슈타인》 번역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다운받아 읽기도 했어요.
What's in my millie
황석희 번역가에게 독서는 곧 '발견'이다.
지하철 안 짧은 이동 시간에도, '띄엄띄엄'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 붙잡혀 빠져들 때에도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
하나의 작품도 여러 번역자의 시선으로 다르게 바라 보는 그에게 독서는 반복이 아니라 늘 색다른 여행이다.
그의 독서법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책 속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황석희 번역가가 언급한 책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