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올 7월에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를 출간한 작가 원소윤은 무대 위에서도, 책장 앞에서도 ‘이야기’를 탐구한다. 누군가의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진심, 불온함 속에 깃든 진실, 그리고 고통을 통과하며 얻는 위로까지. 그에게 책은 웃음을 만드는 재료이자,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게 하는 창이다. 왓츠인마이밀리와 함께,  ‘읽기’라는 행위를 가장 솔직하게 즐기는 사람, 원소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pisode. 4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올 7월에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를 출간한 작가 원소윤은 무대 위에서도, 책장 앞에서도 ‘이야기’를 탐구한다. 누군가의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진심, 불온함 속에 깃든 진실, 그리고 고통을 통과하며 얻는 위로까지. 그에게 책은 웃음을 만드는 재료이자,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게 하는 창이다. 왓츠인마이밀리와 함께,  ‘읽기’라는 행위를 가장 솔직하게 즐기는 사람, 원소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오랜 시간 '책과 가까운 삶'을 살았어요. 처음 책과 가까워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했어요. 제가 좀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혼자 있을 수 있는 조용한 도서관의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제가 다닌 중·고등학교가 좀 보수적이고 규율이 강한 곳이어서 두발 단속, 치마 길이 단속 같은 게 일상이었는데요. 도서관에 가면 도발적인 책들이 너무 많이 있는 거예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라든가, 파트리크 쥐스킨의 《향수》같은 책들요.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책들이 규율이 강한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이런 책을 학교에서 읽을 수 있다고?’싶은 모순이 재밌더라고요. 책이 하나의 일탈의 통로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책을 가까이하게 됐어요.

책은 주로 언제 읽어요?

한동안 바빠서 못 읽다가 최근에 다시 책 읽는 생활로 돌아왔어요. 역시 다른 것보다 저는 책이 재밌더라고요(웃음).

역시 '책 읽는 생활'이 재밌다고요. 책을 읽으면서 어떨 때 '재미있다'고 느껴요?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을 알려주거나, 기발하거나, 어떤 틀을 깨는 이야기나 농담을 보면 재밌는 것 같아요. 


보통 책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나요?

‘추천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신뢰하는 서평가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즐겨 읽어요. 특히 정희진 작가님이나, 금정연 작가님이 추천한 책들요. 그런 책들은 대체로 챙겨 읽어보는 편이에요.


작가님의 독서 취향이 궁금해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한다고 들었거든요.

금기를 넘나드는 농담을 좋아하고, 상식을 전복하는 걸 좋아해요. 책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는 매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불온한’ 매체라고 해야 하나(웃음). ‘우리가 불온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왜 불온한가’를 재정의하는 책들을 주로 읽어요. 도발성과 급진성을 가진 책들을 읽을 때 영감을 많이 받죠.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급진적이고 도발적이라고 느낀 책은 무엇인가요?

로맹 가리의 《흰 개》라는 책이에요. 로맹 가리가 흰 개를 들여서 보호하게 되는데, 그 개가 굉장히 신사적이고 점잖은 개예요. 그런데 이 개가 흑인만 보면 달려들어서 물어뜯으려 하는 거예요. 로맹 가리가 이 개를 조련사에게 데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묻죠.  조련사가 말하길, 그 개는 그렇게 하도록 훈련받은 개라는 거예요. 그래서 개를 재훈련 시켜요. 저는 ‘개’한테 감정이입하며 읽었어요. 제가 교육받은 혐오와 역할이요. 인상 깊게 읽었어요. 

한 권 더 꼽자면, 일본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쓴 《헌치백》이라는 책이에요. 이 작품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는데요. 작품 화자가 장애 여성으로서 관계를 맺고 임신하고, 임신중절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현실이 담겨 있어요. 불온하면서도, 동시에 진실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책을 읽을 때 천천히, 사유하며 읽는다고요. 소윤에게 독서는 어떤 시간인가요?

독서는 무엇인가를 알아가고,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에요. 책을 읽는 동안에는 늘 고통스럽죠. 그 고통을 지나고 나면 치유되는 경험을 해요. 여기서 말하는 ‘치유’는 내가 이 고통을 기꺼이 겪는다는 감각에 가까워요. 내가 선택한 책을 읽고, 내가 선택한 고통을 견디고 통과하는 것. 그게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자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로 읽는 시간은 ‘병을 주고 약을 주는 시간’이에요. 

최근에 그런 고통을 안겨준 책이 있어요?

정희진 작가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라는 책이요. 작가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너무나 치열하게 사고하는 분이거든요. 원래는 선생님이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추천하는 〈정희진의 공부〉라는 팟캐스트를 즐겨 들었는데요. 올해 안식년이셔서 그 갈증을 달래려고 이 책을 읽었어요.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웠어요?

책에서 제가 이미 본 영화들도 다루는데요. ‘이 영화를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하는 놀라움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이렇게 밀도 높은 감상을 하고, 이렇게 치열하게 사유할 수 있다는 게 감히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의 관점, 그 치열함과 부지런함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그 앎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어요. 세상엔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웃음).

어떤 관점이나 시선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제가 흥미롭지 않다고 느꼈던 영화나 작품들도 정희진 선생님의 관점으로 다시 분석해 보면 너무 논쟁적인 지점들이 숨어 있는 걸 발견하게 돼요. 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죠.


밀리의서재를 주로 언제 이용해요?

밀리의서재를 2020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동할 때 많이 읽어요. 대중교통에서 책을 꺼내서 펴고 덮기 불편하잖아요. 잠자기 전에도 많이 보고요. 글쓰기 전 자료 수집할 때 주제에 맞는 책들을 밀리의서재에서 검색해서 참고하고 있어요.


그럼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뭐예요?

하이라이트를 진짜 많이 활용해요. 하이라이트만 1,700개 정도 있더라고요.


최근 하이라이트로 표시한 문장 중에서 마음을 울린 문장이 있어요?

최근에 박민규 작가님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었는데, 책 내용 중 이런 문장이 있어요.


"역시나 결국 여당과 독재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간다 해도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에 나는 생각했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9p


이 문장은 사랑에 빠진 화자가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쓴 대목인데요. ‘이익’이라는 단어와 ‘사랑’이 함께 쓰인 낯선 조합이 인상적이었어요. ‘천문학적 이익’이라고 하면 보통 워런 버핏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을 떠올리잖아요(웃음). ‘사랑이 천문학적인 이익’이라니, 발상 자체가 너무 새로웠어요. 각각의 단어들이 기존의 맥락을 벗어나 연결될 때 오는 쾌감이 있었고, 문장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천문학적이라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될 수도 있구나.’싶더라고요. 


책을 읽을 때 한 권씩 정독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여러 권을 병렬 독서하는 편이에요?

직렬 독서를 해요. 병렬 독서는 아직까지 신비의 영역이에요(웃음). 출판 편집자로 일할 때는 여러 권 동시에 봐야 하니까 병렬 독서를 하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한 권에 집중하는 몰입의 경험을 정말 좋아합니다.


최근 '내 서재'는 어떤 책을 담았어요?

밀리의서재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고전 문학이 많다는 점이에요. 여러 판본이 있어서 출판사마다 번역이 다른 버전들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정말 좋아요. 최근에는 ‘고전 문학 도장 깨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문학을 많이 담아놨고요. 지금 구상 중인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주제별로 ‘A책’, ‘B책’, ‘C책’ 식으로 나눠서 모아뒀어요.



그럼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어떤 건가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각 지역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반응, 무대의 공기를 기록하는 스탠드업 일지 같은 걸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쓴 공연 일지라니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꼭 써주세요 (웃음). 특별히 좋아하는 책 장르가 있어요?

코미디와 문학은 뿌리가 같다고 보거든요. 둘 다 아이러니와 냉소, 풍자를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닮아 있거든요. 그런 분위기의 문학을 좋아해요.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같은 작품요. 화자가 세상을 곱게 보지 않죠. 계속 투덜대고 냉소적인데 그 시선이 너무 인간적이고 재밌어요. 잘 만들어진 스탠드업 스페셜을 보면, 가끔 문학 속 화자가 무대 위로 튀어나와 마이크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게 코미디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잖아요. 요즘같이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계절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멀리사 브로더(Melissa Broder)의 《오늘 너무 슬픔(So Sad Today)》을 추천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딱 어울려요. 이 작가는 평생 중독에 중독되는 삶을 살아왔어요. 담배를 끊으면 당에 중독되고, 당을 끊으면 술에, 술을 끊으면 약에, 약을 끊으면 관계에. 그런 식으로 계속 중독을 돌려 막기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그러다 아주 심각한 공황발작을 겪은 후, 자신의 불안과 강박을 털어놓기 위해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계정 이름이 바로 ‘So Sad Today’(오늘 너무 슬픔)였어요. 



내용이 너무 처절한데 동시에 웃겨요.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블랙 코미디 같은 유머가 담겨있거든요. 이 책은 ‘모든 걸 극복하고 행복해졌다’는 식의 치유 에세이가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슬픈 사람의 고백이에요. 그런데 그 진창 속에서 함께 구르고 웃으면서 느끼는 위안이 있어요. 읽다 보면 ‘아, 이 사람 오늘도 슬프겠구나’싶은데, 이상하게 그게 가깝게 다가와요. 



최근 완독한 책은 무엇인가요?

앞에서 언급했던 박민규 작가님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연애 시장에서 소외된 여성’이거든요.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돼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왜 사랑이 ‘천문학적인 이익’인지 보여주는 소설이에요. 정말 로맨틱한 책이라 추천합니다!

'완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완독은 한마디로 ‘케미’라고 할까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나랑 케미가 안 맞으면 중간에 덮을 수 있는 거고, 케미가 맞으면 끝까지 가는 거죠.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어요. 밀리의서재를 구독하면서 그 의무감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읽다가 나랑 안 맞으면 바로 다른 책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밀리의서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웃음).


What's in my millie

원소윤은 웃음과 사유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코미디로 인간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문학으로 그 아이러니를 붙잡아 사유한다. 책에서 얻은 문장은 무대 위 농담이 되고, 웃음 속에서 다시 질문이 된다. 읽는 일과 웃기는 일, 둘 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소윤은 오늘도 ‘읽기’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써 내려간다.


밀리의서재와 함께한 원소윤의 왓츠인마이밀리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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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원소윤이 추천한 책이 궁금하다면?